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, 갑자기 유턴하는 찻길을 뒤늦게 서야 알아채고는
“참! 우리 집은 이쪽이지?”라고 한 말을 듣고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댔다.
참으로 오랜만의 행복이었다.
거의 거동을 못하시던 친정엄마가 겨우 몸을 추스르시더니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
억지를 부리셔서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.
엄마를 붙잡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자식들에게 여러 달 의지하다보니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시며 몸 움직일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는 그 말씀 때문이었다.
엄마를 엄마네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일도 잠시 서울에 다녀간 동생의 몫이 되었다.
애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것을 엄마한테는 숨기고 있었는데 우환도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건지 하필 엄마도 그때 입원을 하시게 된 것이다.
먼 출장길에 있는 제부를 대신해 고향으로 엄마를 모시로 가면서 길을 잘못 들어 낯선 길에서 통곡을 했다는 초보운전수 동생은 그때의 경험이 약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고향까지 무사히 잘 다녀왔다며 그동안 비어있던 고향집도 청소하고 몇 가지 반찬도 해드리고 왔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돌아오는 길이 여간 힘든 게 아니더란다.
엄마는 허리수술을 하시고 얼마안가 난간에 옆구리를 부딪치는 사고로 거의 꼼짝을 못하셨다. 그리고 다시 거동하실 만하니까 이번엔 한밤중에 화장실 가시려다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시고 만 것이었다. 그때는 정말 이게 끝인가 싶었다. 그때서야 비로소 난 사람이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일인 줄 알았고,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를 알았다.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.
그곳으로부터 어떤 탈출구가 필요했다. 한 없이 추락하는 날개를 다시 펴고 싶었고 다시 살고픈 어떤 활력이 필요했다. 그러다 불현듯 이사를 해야겠다고 정했고, 다행히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.
"너랑 참 잘 어울린다. 이젠 좋아하는 화초도 원 없이 키울 수 있겠네"하시면서 엄마가 더 많이 좋아하셨다.
‘그래요. 엄마, 많이 좋아요. 이사하는 날엔 많은 떡을 했어요. 그래서 이웃에도 나눠먹고요. 우리 집 앞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갖다드렸더니 정말 많이 반가워하시데요. 나중에 엄마 우리 집에 또 오시면 그땐 심심할 틈이 없겠지요?. 엄마가 너무 순해지셔서 맘이 편치가 않아요. 예전처럼 다시 강해지셔서 엄마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들이랑 오래오래 살아요."